지인들이랑 trpg하는데 삘받아서 적은 글.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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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숲 속, 밝은 태양이 나뭇잎 사이로 땅을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먼 과거에 엘프들이 지내며 강한 생명력을 부여한 축복받은 숲.
[앵샤이어 숲]은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으리라.
"으으음......"
따스한 햇살 속에서 금발의 엘프가 몸을 일으켰다. 특정 나이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살아가는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외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엘프였다.
잠에서 깨어난 엘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본인이 왜 여기있는지 모르는 듯했고, 이윽고 자신 옆에 있던 물체를 들어올렸다.
-후두둑
물체를 뒤집자, 또 다른 물체들이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겉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엘프는 그 [책]을 펼쳤다. 책 속에는 몇가지 글귀가 적혀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이 책이 [주문서]라는것을 기억해냈다.
엘프는 [가방]에서 떨어진 다른 물건들을 뒤쳐보았다. 그 중에는 [빵] 몇덩이와 적당한 양의 [물]이 있었고, 가방과 함께 [지팡이]가 있었다.
지팡이를 잡자, 희미한 기억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엘프는 마법사였고, 대륙을 돌아다니며 엘프 유적을 탐험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유적을 다니며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찾고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다시 되짚어 보지만, 더 이상 기억나는게 없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향하고 있던거지? 여긴 어디고, 어디로 가야하지?
엘프는 가방 속에 쏟아진 물건들을 다시 넣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아있는 기억속에는 유적을 다녔다는것 뿐.
기억을 잃은 지금, 자신에게 남은 단서라고는 유적 뿐이었다.
'일단 움직여야해. 숲에서 가만히 있는건 자살행위야.'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그녀는 숲에서 빠져나왔다. 숲을 빠져나오자, 그곳에는 황폐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숲 근처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땅이 있었다. 주변에선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엘프는 숲을 뒤로하고 하염없이 걸었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었다. 그렇게 걷는동안 몇몇 숲을 지났지만,
죽음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며칠을 걸었을까, 멀지 않은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죽음의 기운도 함께 느껴졌지만, 생명과 죽음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기운이었기에 엘프는 그곳으로 향했다.
기운이 느껴진곳에 도착한 엘프의 눈에 펼쳐진 것은 다수의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있는것이었다.
인간들은 서로를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며, 활로 맞추었다. 이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던 엘프는 이유를 묻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언가의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위험해!”
소리와 동시에 시야가 옆으로 이동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뛰고있었다.
몸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같이 뛰고있었고, 인간 무리들로부터 멀어지자 속도를 늦추었다.
“전쟁터에서 뭐하는거야? 죽고싶어?”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온 상대의 목소리였다. 엘프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전쟁터? 그게 뭐지? 엘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설마 전쟁중인걸 모르고있는건 아니지?”
“….전…쟁?”
“설마 전쟁을 모른다니. 엘프가 인간들과 담을 쌓고 지낸다는건 알았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는걸?”
소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엘프를 쳐다봤다. 성숙한 엘프와 인간 여자 사이엔 엄청난 세월의 차가 있었을테지만, 기억을 잃은 본인은 어린 소녀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뭘 하고있었던거야?
“…기억을 찾고있어.”
“음…기억을 찾는다고 해도 말이지…보통 사람이 싸우고 있는데 가서 물어보나?”
엘프는 말이 없었다. ‘싸움’이라는 행위조차 잊어버린 그녀에게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하아…암튼, 뭐 조금이라도 생각나는거 있어? 나라도 괜찮다면 도와줄게.”
엘프는 자신의 지팡이를 내보이며 말했다.
“기억나는건…내가 마법사라는거. 그리고…유적.”
“유적? 유적 탐험을 다니다가 기억을 잃은건가?”
엘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의 반응을 본 소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근처에는 유적이 없어. 아마 있었다고 해도 전쟁에 휩쓸려서 찾기 힘들거야. 근처 도시로 가서 알아보자.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소녀는 이정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부탁해. 나는 마루야. 카스야 마루. 넌 이름이 뭐야?”
손을 내민 것은 악수를 위한 행위라는 것은 알고있었다. 엘프는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잘부탁해. 내 이름은…..아…”
자신의 이름마저 잊었다는게 방금 생각났다. 엘프는 손을 내민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설마 이름까지 잊었을줄은 몰랐는걸. 사태가 꽤 심각하네. 괜찮으면 내가 이름을 붙여줘도 될까? ‘너’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잖아?”
엘프는 말 없이 끄덕였다. 그러자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음…그럼 내 이름을 따서 카스야 무메이는 어때? [이름이 없다]라는 뜻이야. 너에게 딱 맞는 이름이지?”
소녀는 가슴을 펴보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기억이 없는] 자신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고 그녀도 생각했다.
“…응. 난 무메이야. 잘부탁해,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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